특정 무늬가 그려진 옷을 입으면 인공지능이 사람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디지털 투명망토'가 등장했습니다. 수만 원에서 최대 100만 원에 팔리고 있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사생활을 지키려는 쪽과 감시를 피하려는 쪽이 같은 물건을 쓰고 있습니다.
사각형이 사라지는 순간

작동은 눈으로 확인됩니다. AI 카메라 앞에 서면 사람으로 인식돼 몸에 사각형이 뜹니다. 특수 패턴을 붙인 옷을 입자 그 사각형이 순간적으로 사라졌습니다.
무늬 자체는 사람 눈에 그대로 보입니다. 숨는 것은 사람의 시야가 아니라 기계의 판단입니다.
판매자들은 이 옷을 입고 거리를 걸어도 인공지능 CCTV에 감지되지 않는다고 강조합니다. 한 홍보 문구는 이렇습니다. "이 주변에서 카메라에 잡히지 않는 유일한 사람이에요."
그러면 이 무늬는 무엇을 건드리는 걸까요? 이 패턴은 '적대적 패턴'으로 불립니다.
AI는 사람을 구별할 때 윤곽과 색상, 질감 정보를 조합해 판단합니다. 적대적 패턴은 그 판단 과정에 혼란을 줘 사람으로 감지될 확률을 낮춥니다.
이홍주 서울과학기술대 인공지능응용학과 교수는 각종 감시장치에 AI 기술이 도입되고 있으며, 이런 오탐지나 오인식을 방지하기 위한 연구가 여러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연구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앙일보는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팀이 공개한 '노리코그니션' 프로젝트에서 소용돌이 형태 무늬가 찍힌 옷을 입은 사람을 AI가 식별하지 못했다고 전했습니다.
해커 콘퍼런스에서 공개된 것
이달 초 열린 세계 최대 해커 콘퍼런스 데프콘 2026에서도 AI 감시망을 무력화하는 무늬가 공개됐습니다.
미국 해커 빌 스웨어링언은 자신이 설계한 것이 최신 카메라 모델들을 무력화하는 적대적 패턴이라고 밝혔습니다. 같은 무늬를 차량에 씌웠더니 경찰 감시 카메라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사생활을 되찾으세요'라는 문구로 옷을 판매할 계획이고, 모금은 벌써 2억 원 가까이 모였습니다.
이런 물건이 왜 팔릴까요? 반대쪽에 무엇이 있는지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매달 200억 개의 번호판

미국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는 것은 차량 번호판을 찍는 감시 카메라입니다. 49개 주에 12만 대 넘게 설치돼 매달 200억 개의 번호판을 촬영합니다.
운영사가 내세우는 논리는 분명합니다. 범죄 수사를 하려면 차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동 실종부터 총격 사건까지 상당수 범죄에 차량이 동원되니 차를 빨리 검색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설명입니다.
반발도 큽니다. 애리조나 주민 네이선 테일러태프트는 CBS 뉴스에서 이런 무차별적 감시가 헌법상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AI가 시스템의 핵심 동력이 되면서 상황이 더 악화했다고 말했습니다. 수집된 데이터가 이민 단속 기관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카메라를 철거하거나 총을 쏘는 사례까지 나왔고, 정치매체 악시오스는 이 카메라가 중간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보도했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운영사 플록 세이프티는 8월 13일 공식 블로그에서 번호판 데이터 보관 기간의 기본값을 30일에서 7일로 바꾼다고 밝혔습니다. 기존 고객은 지금 설정을 그대로 씁니다.
운영사 CEO 개럿 랭글리는 사생활이나 안전 중 어느 한쪽만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순위를 잘못 짚은 것이며, 안전을 지키면서 사생활과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가의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숫자가 이미 나와 있습니다.
하루 100번, 그리고 창과 방패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감시카메라는 2022년 기준 160만 대를 넘어섰고, 최근 몇 년간 해마다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상가와 아파트, 차량 블랙박스 같은 민간 설치분을 더하면 규모는 훨씬 커집니다.
2021년 행정안전부와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서는 30~40대 직장인이 하루 평균 100번 가까이 카메라에 노출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범위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2022년 6월 갱신한 AI 감시 지수에 따르면 조사 대상 179개국 가운데 최소 97개국이 공공 감시에 AI와 빅데이터 기술을 쓰고 있습니다.
이 물건에는 그늘도 있습니다. 사생활 보호를 내세우지만 범죄자가 CCTV 감시나 추적을 피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함께 나옵니다.
안전 문제도 제기됐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투명망토 패턴이 자율주행차 카메라를 속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감시를 피하려고 만든 무늬가 도로 위의 차를 헷갈리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김덕진 IT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은 AI를 악용하려는 움직임과 그 움직임을 막으려는 쪽 사이의 '창과 방패' 같은 구조로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유통되는 패턴이라 국내에서도 유행할 가능성이 큽니다. 사생활 보호와 범죄 악용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사회적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카메라 12만 대와 하루 100번, 그리고 100만 원짜리 옷 한 벌. 지금 저울에 올라 있는 것들입니다.